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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두면 쓸모있는 인물사전-#02 이휘소 박사

#들어가기 전에

안녕하세요. 알아두면 쓸모 있는 인물 사전, 줄여서 ‘알쓸인’을 운영하는 기자 이승구입니다. ‘노벨상’ 다들 한 번쯤은 들어보셨죠? 하지만 이 명예로운 상을 한국인이 과학계에서 수상한 사례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노벨상을 받을 수 있을 정도로 물리학계를 뒤흔든 한국인 과학자는 존재했습니다. 이번에 알아볼 인물은 국가 기술 유공자 중 한 명이자 한국에서 노벨상에 가장 근접한 과학자, 이휘소 박사입니다.

#이휘소의 생애 part1) 미국으로의 유학

이휘소는 1935년 경기도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릴 적 유일한 취미는 ‘독서’로 한 가지의 의문이 생기면 이를 끝까지 파고들어 공부하는 학생이었다.

특히 화학 과목에서 특출난 재능을 보였다. 6.25전쟁이 발발하고 몇 년 뒤 이휘소 박사는 중학교에 입학해 검정고시를 치르고 1953년 서울대학교 화학공학과에 수석으로 입학하게 된다.

이휘소 박사는 대학 입학 후 독학으로 공부할 만큼 화학공학보다는 물리학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된다. 전과까지 신청했으나 당시 학교 규정 때문에 전과하지 못하고, 이휘소 박사는 물리학을 공부하기 위해 1955년 미국으로 떠나게 된다.

1956년 대학을 졸업하고, 이휘소 박사는 석사과정에 입학하게 된다. 이때 처음으로 물질을 구성하는 요소를 밝히는 학문인 소립자 물리학 연구를 하기로 결심하게 된다.

후 박사과정을 밟으며 1960년에 그는 <k+중간자와 핵자 산란 현상의 이중 분산관계>라는 논문으로 물리학계에 이름을 알리게 되고, 이를 통해 천재들이 모여있는 최고의 과학연구소인 프린스턴 고등과학연구소로 입성한다.

#이휘소의 생애 part2) 물리학자를 돕는 물리학자

1970년 이휘소 박사는 우주의 모든 현상을 한가지로 규명하는 통합이론인 스티븐-와인버그의 표준모형을 설명하려고 시도한다.

이론만은 완벽했지만, 스티븐-와인버그 모형을 제시한 과학자들이 자신들의 이론을 증명하지 못하자, 이휘소 박사는 간단한 수식으로 이론을 증명하고 이를 설명한 논문을 발표한다. 이로써 과학계는 물질의 근원을 밝히는 데 한 발짝 더 진보하게 된다.

또한 당시 모든 물질과 소립자가 업 쿼크, 다운쿼크, 전자로 이루어져 있고 거기에 더해서 참 쿼크(charm quark) 또한 존재한다는 가설을 내세웠다.

이후 이휘소 박사는 참 쿼크의 질량과 참 쿼크를 찾는 방법을 담은 논문을 발표하고 실제로 이를 연구한 과학자들은 노벨상을 받게 된다.

이휘소 박사는 국내 연구 부흥에도 힘썼다. 앞서 말한 두 가지 업적을 이룬 후 이휘소 박사는 모교인 서울대로 돌아온다.

외국 보다 열악한 연구 환경에 놀란 이휘소 박사는 ‘지금 필요한 건 장비와 시설이 아닌 사람’이라고 말하며 미국에서 연구비를 받아와 국내 연구 환경 개선을 시도했다.

이렇게 대한민국 과학계를 이끌 인재 중 인재였던 이휘소 박사는 미국에서 자가용으로 이동하던 중 교통사고로 40대라는 이른 나이에 영면한다.

#이휘소의 업적: 참 쿼크 발견에 대한 예측

쿼크란 쉽게 말해 원자보다 더 작은, 우주를 구성하는 기본 입자를 말한다.

자연계에는 기본적으로 4가지 힘인 중력, 전자기력, 약력, 강력이 있다. 이중 중력을 제외한 힘을 바탕으로 12개의 페르미온 입자, 4개의 보손 입자, 힉스입자의 총 17개의 입자 간 상호작용을 설명하는 모델을 표준모델이라고 한다.

이러한 표준모델에서 당시 알려져 있던 페르미온 입자에 포함된 쿼크가 세 개였을 때 이휘소 박사는 <참 쿼크를 찾아서>라는 논문을 낸다. 이 논문은 당시 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을 관찰하고 새로운 쿼크의 존재를 예견했으며 질량 범위 또한 추측했다.

이휘소 박사가 작성한 논문을 바탕으로 표준모델을 연구한 물리학자들은 실제로 참 쿼크를 발견하게 되고 이에 대한 공로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는다. 또한 이를 바탕으로 표준모형을 이루는 입자가 하나씩 찾아지게 되고 2012년에는 표준모형의 힉스입자까지 발견된다.

표준모형은 ‘현대 물리학의 근간’이라고 불리게 된다. 이처럼 이휘소 박사는 물리학자를 도와주는 물리학자로서 과학계에 공헌하였다.

#한마디

저는 몇 년 전 참가한 과학 캠프에서 화상통화를 통해 노벨상 수상자분을 만나 뵌 적이 있었고 그때 당시 한 학생이 한국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지 않는 이유를 여쭈어보았습니다.

노벨상 수상자분은 이러한 질문에 위대한 발견을 해도 노벨상을 받지 못한 사람이 매우 많다고 하시며, 목표를 쫓아서 연구하는 것이 아닌 새로운 것을 탐구하고 상상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답변을 해주셨습니다.

비록 우리가 이휘소 박사처럼 천재는 아닐지라도, 맹목적으로 목표를 향해 달리는 게 아닌 앞서 노벨상 수상자분이 말씀해 주신 것처럼 새로운 걸 탐구하고 상상하며 이를 즐겨보는 자세를 가져보는 건 어떨까요? 이상으로 이번 기사를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알아두면 쓸모있는 인물사전 – #01 조지프 퓰리처

(사진출처: 조선일보)

#들어가기 전에

안녕하세요. NDJ_CODERS에서 기자로 활동하고 있는 이승구입니다. 여러분 혹시 퓰리처 상에 대해 들어보신적 있으신가요? 잠시 아래 사진을 보시죠.

위 사진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k-퓰리처 사진이라고 불리우는 사진인데요. 주차금지라고 써놓은 도로 위에 눈이 온 뒤 차가 지나간 모습인데, 주차금지라고 쓰여져있는 부분만 주차해 놓았던 모습이 감명깊은(?) 느낌이 듭니다. 이처럼 한 장의 사진, 한 편의 글은 개인 혹은 사회에게 깊은 질문이나 인상을 남기기도 하는데요. 첫 번째 글 인만큼, 기자라는 직업의 본질을 생각하여 근대 언론의 아버지 조지프 퓰리처와 그가 제정한 시상인 퓰리처 상에 대해서 자세히 파헤쳐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퓰리처의 생애

퓰리처는 1847년에 헝가리에서 유대계 부유한 골목상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어릴 때부터 교육을 받아 지성인이 되었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시게 되고, 그는 돈을 벌기 위해 17세 나이로 미국으로 입성해 여러 가지 직업을 옮겨 다니며 닥치는 대로 일을 했습니다. 비록 모국에서는 지성인 이었을지 몰라도, 미국에서는 영어가 되지 않아서 일자리가 구해지지 못했고, 심지어는 사기꾼을 만나 돈마저 날리게 되었죠.

사기꾼을 잡고 더 이상 다른 피해자가 나오지 않게 하겠다는 일념으로 퓰리처는 이민자들을 위해 독일어로 발행되던 신문 <웨스틀리체 포스트>에 자신의 사연을 투고했고, 퓰리처의 뛰어난 문장력과 언어능력을 알아본 편집자가 그를 신문사의 기자로 고용하게 되었습니다. 퓰리처는 남다른 노력을 통해 인지도가 높은 기자 그리고 정치인이 되었고 25살의 나이에 ‘세인트 루이스 포스트 디스패치’라는 신문사를 세워서 큰 성공을 이룹니다. 그리고 뉴욕으로 건너가 ‘뉴욕월드’를 인수하면서 신문경영인으로 이름을 날리게 되죠.

그는 ‘재미없는 신문은 죄악’이라고 말하며 판매 부수를 늘리기 위해 신문에 사람들이 흥미로워할 이야기나 선정적인 내용, 스캔들을 대서특필했습니다. 신문에 오락성과 상업성을 불어넣은 것이었죠. 이는 기존에 있던 신문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전화하는 시도였으며, 사람들의 수요를 만족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를 통해 ‘뉴욕월드’는 미국에서 최고의 발행부수를 자랑하는 신문이 됩니다. 하지만 퓰리처는 또 다른 신문 경영인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와 만나며 문제를 겪게 되는데, 바로 ‘황색언론’ 문제였습니다.

‘황색언론’은 퓰리처의 뉴욕월드가 연재하던 ‘노란꼬마’라는 만화를 앞서 말한 허스트가 담당작가를 빼돌려 자신의 신문인 뉴욕저널에 연재하는 상황에서 나온 용어로, 두 신문사는 각자의 신문을 더 잘 팔리게 하기 위해 선정적인 경쟁과 언론방식을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퓰리처는 황색언론에서 발을 돌리게 되었고, 뉴욕월드는 다시 정부와 대기업의 부정부패를 고발하는 기사를 쓰기 시작하면서 진정한 언론의 모습을 찾아갔습니다.

과도한 업무로 인해 몸이 망가진 퓰리쳐는 자신이 좋아했던 조용한 장소인 요트 위에서 1911년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리고 당시 ‘뉴욕월드’는 미국 언론사에서 가장 존경받는 신문이 되었습니다.

#퓰리처 상

퓰리처는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황색언론의 대명사가 된 일을 무척 후회했다고 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만든 언론의 역기능에 대한 속죄의 의미로 제대로 된 언론인을 양성하기 위한 고등교육이 필요함을 절실히 느꼈고, 이를 콜롬비아 대학에 의뢰합니다. 그리고 역시 콜롬비아 대학에 기금을 맡겨 한 해 동안 가장 훌륭한 기사를 쓴 저널리스트에게 주는 상을 제정하도록 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오늘날 저널리즘 분야에서 가장 권위있는 상, 퓰리처상 입니다.

퓰리처 상은 언론 분야에서 뉴스와 보도사진 등 14개 부문에 수상합니다. 공공보도, 특종보도, 탐사보도, 국내, 국제보도, 기획보도, 시사만화, 특종사진, 기획사진 등에 상을 수여하며, 언론 외 분야는 허구과 실화, 연극, 역사, 전기, 시, 음악 이렇게 7부분에 대해 수상합니다. 그리고 간혹 특별분야에서 상을 수여하기도 합니다.

#한마디

저는 퓰리처 사진 수상작 전시를 본 경험이 있습니다. 입장료가 만원이 넘어서 비싸다는 생각을 가지고 입장했지만, 전시를 보고 나온 후 입장료가 전혀 아깝지 않았습니다. 한 장의 사진이 던지는 일종의 메시지를 생각하며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고민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전시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we are having time for our lives’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는데, 이 문구는‘우리는 우리의 삶을 위한 시간을 가지고 있습니다.’라고 해석됩니다. 우리의 삶을 위한 시간을 고민하고 싶은 분들은 퓰리처 수상작 전시에 가는 것을 적극 추천합니다.

사진, 순간을 영원으로

-한국인 최초 퓰리처상 수상자 김경훈  

P.S. 첫글이라서 아직 미숙하고 부족한 점이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읽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자신이 관심있는 혹은 소개하길 원하는 인물을 알려주시면 적극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